공정위 이슈 관련 국회 정책토론회서 해운법 개정 점검
부당 공동행위를 이유로 컨테이너선사에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거래위원회 제재가 위법하다고 한 항소심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은 가운데 ‘공동행위를 허용한다’는 규정이 유일하게 들어가 있는 해운법을 무시하고 공정거래법의 잣대로 해운사를 처분한 건 법 체계를 매우 잘못 해석한 거란 지적이 나왔다.
지난 19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정기선사의 해운 공동행위 학계 의견 발표’ 토론회에서 국적선사 변호를 맡고 있는 강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도 개별 법률의 문언이나 실질적인 내용을 해석했을 때 공정거래법보다 개별 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게 가능하다고 많은 법학자들이 주장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한국해운협회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서 강 변호사는 “(정기선사 공동행위에) 공정거래법이 적용되느냐 안 되느냐는 ‘노골적으로 경쟁자를 시장에서 배제하는 행위’ 같은 실체적인 근거와 내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지 신고나 협의 같은 행정적인 절차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공정위가 선사들이 최저운임이나 긴급유가할증료(EBS) 등의 부속 합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수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고 화주 단체와 협의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과징금 제재를 내린 건 부당하다는 게 강 변호사의 견해다.
경쟁제한성 아닌 행정절차 문제삼은 제재는 부당
대법원 제3부(주심 엄상필)는 지난 4월24일 대만 컨테이너선사 에버그린이 우리나라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의 취소 소송’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해운사 공동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재판관 만장일치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해운법 29조에서 컨테이너선사의 운임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해수부 장관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제의 방법과 절차를 정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컨테이너선사들의 공동행위 중 ‘신고되지 않은 공동행위’는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사이에서 모순 저촉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해수부 장관과 공정위가 모두 규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다른 법률에 특별한 예외 규정이 없는 한 모든 산업 분야에 공정거래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강 변호사는 “개별 법 중 유일하게 ‘공동행위를 허용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고 해수부 장관에게 관할 권한을 맡긴 해운법에 근거해 정기선사의 공동행위를 규율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특히 1999년 2월 ‘공정거래법 적용이 제외되는 부당한 공동행위 정비 법률’(카르텔 일괄 정리법) 시행 이후에도 해운법의 공동행위 허용 규정이 유지된 점에 주목했다.
카르텔일괄정리법은 특정 산업 보호·육성 등을 이유로 정부가 허용해 오던 공동행위 중 경쟁 제한성이 크거나 국제 기준에 비춰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공동행위를 금지한 법안이다. 이 법이 도입되면서 변호사 행정사 공인회계사 관세사 주류업 보험업 농업 해외건설업 등의 공동행위가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에 포함됐지만 해운법에서 규정한 정기선사의 공동행위는 효력을 계속 인정받은 바 있다.
강 변호사는 아울러 “정기선 해운사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해운법에 ‘공정거래법 적용이 제외된다’는 명시적 규정이 들어가면 법원에서 판단을 내리기가 훨씬 더 쉬울 거”라며 “향후 입법론적으로 이런 규정들을 도입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제안했다.
화주단체, “국익·공익 우선해 국적선 공동행위 판단해야”
이어 양창호 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에서 선사 간 경쟁 제한을 수반하는 공동행위가 불가피하다”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보고서 내용을 인용하면서 “국내선사들의 공동행위는 글로벌 초대형 선사들과 경쟁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공정위가 해운사 공동행위가 실질적으로 경쟁을 제한했는지 여부를 입증하지 못한 채 제재를 내렸다고 비판했다. ▲운임을 인위적으로 인상하고 유지하고자 한 행위 ▲시장 점유율이 80~90%에 달하는 점을 들어 해운사 공동행위가 ‘당연위법’하다고 추단한 공정위 심사는 시장 구조와 경쟁 상황, 시장 지배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경쟁 제한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이어진 토론에서 법무법인 율촌 김규현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어떤 결론을 내린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판단을 하기 위한 출발점을 제시한 거란 생각이 든다”며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신고되지 않은 공동행위’를 언급했는데 향후 신고 여부를 두고 해수부의 입장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최종적인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와 달리 부속 운임 협약을 “적법한 절차 내에서 이뤄졌다”고 판단한 해수부의 유권해석을 법원이 큰 비중으로 반영할 거란 게 김 변호사의 관측이다.
해운협회 김경훈 이사는 “해운사와 화주단체가 정기적으로 만나 협의하고 애로사항이 있으면 해소하고 있는데도 공정위가 화주와 협의가 안 됐다고 하는 건 해운업계의 공동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며 “해수부와 공정위의 지도 감독 권한을 엄격하고 면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어 해운법 29조에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한다’는 규정을 추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역협회 화주협의회 이봉걸 사무국장은 “법 집행이 처벌보다 국익과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느냐 해운 경쟁력을 어떻게 높이고 화주들의 실익에 도움이 되느냐에 맞춰져야 하는데 이번 판결은 이 부분을 간과했다”며 “한국 해운 경쟁력을 약화시켜서 시장 주도권을 글로벌 선사에게 넘겨줘서 코로나 시기에 경험한 물류대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수부 김승룡 해운정책과 해운질서팀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정위 같은 경쟁당국에서 해수부의 지도감독 능력이나 업무 범위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며 “해운법 29조의 취지를 견지하되 공정거래법과 상호 권한을 명확히 하고 공동행위의 신고 범위와 절차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쪽으로 제도 개선을 해나가야 할 거”라고 의견을 밝혔다.
객석에서 토론회를 지켜본 고려대 김인현 교수는 “해운법은 1963년 제정될 때부터 운송인은 운송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경쟁법 규정을 가지고 있었고 1978년 정기선사 운임 공동행위 내용이 추가됐고 공정거래법은 1980년에야 유럽의 경쟁법을 본따서 제정돼 이 기조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며 “이런 관점에서 해운법 제29조는 운임 공동행위와 관련해 독자적이고 자기완결적인 제도로 봐야 하고 해양수산부만이 규제 권한을 갖는다는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맞다”고 지적했다.
<출처 :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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